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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22일 주일 낮 설교 원고

      날짜: 2020. 03. 22  글쓴이 : 김민호목사

      조회수 :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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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일 안에 내포된 안식일 정신

         

         

         

        말씀: 요한복음 7:37-39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서 볼 때, 결코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율법은 폐지 된 것이 아니라 완성 됐다는 점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형식은 폐지 됐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2:17)이기 때문입니다. 실체가 왔으므로 사람들이 실체이신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려면 그림자는 제거돼야 마땅합니다. 이런 사실을 사도 바울은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을 알게 된 사람들에겐 이렇게 수건이 벗겨집니다. 그래서 그림자에 주목하지 않고 실체를 주목하게 됩니다.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 절기나 초하루, 안식일, 성전과 성전 제사도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율법이라는 그림자(형식)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 들어간 신자는 율법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게 됐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율법의 완성을 바라봅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여전히 복음은 율법의 폐기를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5:17)라고 하신 말씀은 자주 망각합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복음을 오해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런 오해를 받게 된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안식일을 유대인들 방식처럼 지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으로 의료활동을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 비벼 먹는 것을 허용하심으로 타작을 인정하신 것이 돼 버렸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이 안식일을 폐지 하셨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하신 가르침은 안식일의 정신을 명확하게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안식일 준수와 관련된 논쟁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전에 우리는 7:23 말씀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요한복음 7장은 초막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2절을 보면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고 합니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이 사건이 초막절과 관련 있음을 언급합니다. 초막절은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막에 거주하며 광야 생활 했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는 레위기 23:34에서 하나님의 명령으로 지켜졌습니다. 요한복은 7:23은 초막절 가운데 예수님의 안식일 치유 활동에 대한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에 몸을 담궈 병고침 받기 원했던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이 병자를 고치신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예수님은 사람들의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5:16 말씀을 보면 이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박해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대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안식일을 파괴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초막절 안식일에 또 다시 논쟁거리가 됐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할례 하는 일과 안식일에 온몸을 치료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안식일 정신에 충실한 것인지 묻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않기 위해 안식일에도 할례를 하는데, 하물며 38년간 고통을 받던 병자의 전신을 건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율법의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다음에 있습니다. 3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먼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날은 안식일 다음 날을 지칭합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안식일 다음 날을 큰 날이라 합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레위기 23:34-36(p.183)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 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레위기 말씀에서 우리가 흥미롭게 보아야 할 점은 장막절 마지막 날(명절 끝날)36절에서 여덟째 날이라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날을 오늘 본문은 큰 날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날 하나님은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명절 끝날7일 동안 장막절을 지키고 8일째 되는 날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8일 날을 성회로 모이라고 합니다. 안식일 다음 날거룩한 대회라고 했는데, 이 날을 오늘 본문은 큰 날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날을 안식일처럼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고 명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제8큰 날을 안식일처럼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제8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에게 ‘8’이라는 숫자는 부활혹은 재창조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할례를 태어난지 8일만에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17:12). 할례란 신약의 거듭남(새로운 피조물이 됨)을 예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제8일에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나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고 하신 것은 이 날이 안식일의 안식일임을 가르칩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제7일의 안식일은 광야 생활과 관련 맺고 있다면, 8일은 광야 생활을 마치고 들어가는 가나안 땅’(안식처)의 삶을 보여줍니다. ‘가나안 땅’(안식처)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의 그림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삶, 성령으로 거듭난 재창조의 삶을 뜻합니다. 구약시대 때, 이미 제8일을 절기로 지키면서 부활의 날, 재창조의 날을 바라보았다는 말입니다. 이 영광스런 날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논쟁과 함께 8이 어떤 날인지 가르쳐주십니다.

         

        다시 37b-3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제8일이 어떤 날인지 잘 보여줍니다. 주님께 가서 영원이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39절은 이것이 무엇인지 더욱 구체적으로 잘 말해줍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신약의 교회가 안식후 첫날, 다시 말해서 제8(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의 교회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안식일을 지켰다면, 신약의 교회는 안식일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으므로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제8일을 준수합니다. 신약의 교회는 메시아의 도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미 오신 메시아를 통해 장차 들어가게 될 영원한 안식을 바라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활의 날, 재창조의 날로 상징되는 제8일을 지킵니다.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 지킨다는 말입니다.

         

        8일을 주일로 성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바라보며 일요일마다 예배를 합니다. 여기서 예배의 핵심은 말씀을 통해 그 안식을 지금 우리가 사는 영역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을 바라보며 주일을 지키지만 말씀을 믿음으로 받지 않는 자에겐 주일이 결코 유익 되지 못합니다. 이 두려운 경고의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는 4:1-2(p.356)에서 잘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 기자는 이 엄중한 경고를 하면서 40년간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던 히브리인들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제7일 안식일을 지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날이 메시아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날이라는 점은 알지 못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안식일을 지켰지만 실제로는 메시아를 바라보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나타난 현상은 정작 예수님이 나타나도 예수님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점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도 그 마음을 강퍅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비록은 형식적으로 안식일을 준수했지만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에 마음을 완고했던 모습과 짝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3:7-8)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광야에서 히브리인들이 만일 안식일을 바르게 준수했다면 결코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에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신약의 안식일인 주일을 바르게 준수한다면 성도들은 시험의 때에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안식일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잠시 생각해야 합니다.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안식일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십계명입니다. 구약 토라(모세오경)에서 십계명은 두 번 언급됩니다. 하나는 출애굽기 20장이고, 또 하나는 신명기 5장입니다. 출애굽기의 십계명은 시내산에서 선포된 언약이기 때문에 시내산 언약이라 합니다. 반면 신명기 5장에 선포된 십계명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모압 땅에서 선포된 언약이었으므로 모압 언약이라 합니다. 이 두 개의 십계명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극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였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시내산 언약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6일동안 창조하신 후에 제7일에 쉬었기 때문이라고 가르칩니다(20:11). 그러나 신명기 5장에 언급된 제4계명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출애굽을 통한 구원에 있음을 가르칩니다(5:15). 안식일 규례에 대한 가르침이 이렇게 다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 이유는 시내산 언약의 안식일은 하나님이 온 우주의 창조주 되심을 기억하게 하는 데 있었다면, 모압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롭게 재창조하신 날을 기억하게 하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자를 창조의 안식일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재창조의 안식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시내산 언약은 광야 생활을 하게 될 백성들을 향한 언약이라면, 모압 땅에서 받은 모압 언약은 가나안 땅(안식처)에 들어가게 될 백성들을 향한 언약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초막절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초막절에서 그들에게 요구된 안식일은 시내산 언약의 안식일 준수였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40년 생활(7일 초막절) 동안에 안식일을 준수함으로써 온 우주의 창조주가 하나님임을 고백하며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임을 인정해야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 광야의 40년 생활(7일 초막절) 동안 이 고백을 한 사람들만 비로소 안식처인 가나안 땅(8일의 성회) 안으로 들어갑니다. 놀랍게도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인들의 안식처인 가나안 땅이 제8일의 삶을 보여주는 그림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해줍니다. 히브리서 4:8-10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초막절과 히브리서 기자의 가르침은 신약 교회가 추구해야 할 안식일적 삶의 규례와 원리를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신약의 교회가 재창조, 혹은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서 제8일을 기념하는 것이 정당함을 보여줍니다. 8일을 기념하는 날로 정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실은 지난 강해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명확한 몇 가지 근거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부활 후 안식 후 첫날(8)에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점, 둘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 후 첫날(8)에 규칙적으로 예배를 했다는 점, 셋째는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안식 후 첫날(8)주의 날(1:10)이라고 했던 점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 제8일 주일 성수를 안식일 정신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가르칩니다. 신약의 교회는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이며,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의 일을 쉬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쉬느니라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의 일에 있습니다. B.B. 워필드의 지적은 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휴식은 안식일의 본질도 아니고, 그날을 제정하신 목적도 아니다. 휴식은 더 나은 목적, 곧 진정한 안식일의 안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일부터 휴식을 해야 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신약의 교회는 안식일을 폐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신약의 교회는 안식일을 완전케 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B.B 워필드는 이 부분에 대한 오해를 다음과 같은 말로 해소시켜 주고 있습니다.

        4계명이 거쳐 온 외적 변화 가운데 하나는 그날을 지키는 요일이 변경된 것이었다. 그런 변화는 유대인들에게 요구된 안식을 훼손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날을 더욱 위대한 날로 만들었다.”

        신약의 교회는 안식일을 폐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날을 완전케 하는 데 관심을 둡니다. 신약의 교회가 제8(일요일)을 주일로 성수하는 것은 복음이 통해서 제7일의 삶(광야의 삶)에 방황하지 않고, 8일의 삶(안식에 들어간 자의 삶)을 살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제8(일요일)을 주일로 성수한다 해서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7일 안식교인들처럼 신약 교회가 구원을 받기 위해 제8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신약의 교회가 제8(일요일)을 주일을 목숨처럼 성수하는 이유는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특정한 한 날만 안식일로 지키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은 한 날(안식일)만 중요시 여기게 합니다. 그것도 의무적으로 중요시 여기게 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제8(일요일)을 생명처럼 여김으로써 몇 가지 메시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첫째는 신약의 교회는 율법주의자들처럼 안식일 하루만 중요시 여기는 태도를 거부한다는 의미를 가르칩니다. 두 번째는 일주일의 첫 날을 주의 날로 여김으로써 나머지 6일도 안식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이런 차원에서 제8, 다시 말해서 한 주의 하루를 사단에게 빼앗기고 나머지 6일을 주님의 날로 고백 할 수 없다는 점을 묵상케 합니다. 일요일 하루를 경건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나머지 6일을 경건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위선자일 뿐입니다. 이는 마치 1/10을 하나님께 드리는데 인색한 사람이 나머지 전체를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용한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점과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루의 첫날, 8일의 주일을 결코 양보 할 수 없습니다. 이 날은 신자에게 군기와 같습니다. 군사가 군기를 빼앗기면 전쟁에서 패배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제8일의 성회 안으로 들어간 신자는 어떤 방식으로 삶 전체를 안식일로 고백하며 살겠습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고 했던 것처럼 제8일의 성회 안에 들어간 신자는 인생 전체에서 자기의 일을 쉬는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를 향하여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14:7)라고 했던 말은 제8일 안식일에 들어간 신자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던 자들은 안식일 한 날만 이런 삶을 의무적으로 마지못해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예수를 믿고 안식에 들어가자마자 삶 전체를 자발적으로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8일의 안식에 들어간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에게 기대해야 할 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5:20) 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구약의 제7일 안식일에서 제8일의 안식일에 들어간 성도는 삶 전체를 안식일처럼 살아갑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그리스도인 것처럼(12:8) 그의 안식에 들어간 신자는 삶의 모든 영역의 주인이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삶을 삽니다. 이 고백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탄의 통치로 파괴된 세상을 하나님의 통치로 회복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주의 계명을 즐거이 지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실제로 16세기 개혁자들, 17세기 청교도들, 그리고 오늘날까지 영국이나 미국의 경건한 교회들은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또 살고 있습니다. 7일 안식일 준수주의자들보다 더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주일을 철저히 성수하고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토요일부터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주일에는 기도와 말씀 묵상과 경건에만 집중했습니다. 연약한 형제를 돌아보고 성도의 교제에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성도들은 주일엔 매매를 하지 않습니다. 주일에 매매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엄격하게 치리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기초로 하여 나머지 6일 동안에는 안식일적 삶을 가정과 직장과 삶의 전 영역에 확산시키려 몸부림칩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주의 계명을 온전히 준수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육신의 쾌락과 향락을 위해 오락과 유흥을 절제합니다. 불법과 싸우고 가정이 거룩해지도록 돌보며 진리를 확산시키기 위해 전도하는 일에 힘씁니다. 말 그대로 신약의 교회는 종교적 영역만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데 관심을 둡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제8일의 안식에 들어갔다면 무엇보다 일요일을 주일로 성수하는 것을 생명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날 하루를 사수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6일도 결코 거룩한 날이 되도록 할 수 없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한 사람이 큰 일에 충성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가 제8일의 안식에 들어갔다면 주일에 예배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 전체를 경건하게 사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과 경건한 독서에 힘써야 합니다. 어찌하든지 주일에 매매를 금해야 합니다. 주일 전에 구입할 것은 다 구입하고, 주일엔 가게 문을 열지 않아야 합니다. 직장인들은 최대한 지혜를 짜 내서 주일 성수를 종교적 이기심으로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제8일의 안식에 들어간 성도로서 우리는 6일의 삶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자기 일을 쉬는데 힘써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자기 육신의 만족을 위해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게으른 본성을 만족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하며, 자기가 맡은 영역(가정, 직장, 학교)에서 성실함과 탁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안식일적 삶이 의지와 결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오로지 성령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날마다 시간을 정하여 쉬지 않고 기도해야 가능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리라는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믿음이 아니면, 또 기도가 아니면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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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1)

    • 2020-04-10  장봉조 

      원고를 올려 주셨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늘 듣고 있는데 이렇게 원고가 있으니 요약하는데 시간이 많이 절약되고 정말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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