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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여 차별금지법에 저항하라

      날짜: 2020. 07. 01  글쓴이 : 김민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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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여 차별금지법에 저항하라


        김민호 목사

        차별금지법이라는 악법에 대한 사회적, 교회적 저항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사회 변화와 참여에 둔감했던 사회와 교회가 분명히 각성되고 있다. 여기에는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인식 변화도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인권법이라 생각하며 침묵하는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도 상당하다. AIDS 원인을 동성애라 말한다며 이것을 혐오 발언이라 생각한다. 혹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를 죄라 발언하는 것을 개인에 대한 혐오라 생각한다. 놀랍게도 이런 생각은 진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것들이다. 이런 생각은 학교나 매스컴, 다양한 영상 매체에 의해 주입됐다. 그냥 주입시킨 것이 아니다. 그 반대 의견을 공평하게 들을 기회를 박탈시킨 가운데 일방적으로 주입됐다. 때문에 상당수 기독교인들조차 차별금지법이 정당한 법이라 생각한다.

        만일 반대 의견도 공정하게 공유된다면,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차별금지법은 결코 지지 받을 수 없음이 틀림 없다. 이런 차원에서 유튜브 [복음한국TV]를 통해 조영길 변호사의 주장을 요약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동성애는 AIDS의 원인은 아니지만, 감염 경로다.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수진영 사람들이 동성애를 AIDS의 원인이라 주장한다는 식으로 교묘히 왜곡한다. 이런 주장은 진실에 대한 전형적인 왜곡이다. 우리는 단지 AIDS의 감염 경로 99%가 성행위라고 주장할 뿐이다. AIDS가 감기 같은 바이러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애라는 경로를 통해 감염이 일어난다는 점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의학적 사실이다.

        두 번째,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역차별을 불러온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에 대한 어떤 비판이나 설교도 하지 못하도록 전 국민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독재법’이다. ‘동성애 지지자들의 전체주의’를 만드는 법이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학술대회, 연구논문, 언론 보도가 전면 금지됐다. 예배 시간에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동성애에 대한 정죄도 할 수 없다. 가르치면 엄청난 벌금이나, 더 나아가 금고형을 받게 된다. 조영길 변호사는 “동성 성행위라는 행위에 대해 보건적, 신앙적, 양심적 이유로 반대할 자유는 절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차별금지법은 역차별 찬성법이 될 뿐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미 차별금지법에 버금가는 법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혐오하는 것과 행위를 혐오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 둘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보수진영에서 비판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행위’에 대한 비판이다. 사람에 대한 혐오는 이미 실정법에서 금지돼 있고 처벌할 조항이 있다. 이미 동성애자나 트렌스젠더라는 이유로 해고나 채용 거부를 하게 되면 노동법에 의해 처벌 받는다. 뿐만 아니다. 성소수자들을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이나 명예훼손을 하면 ‘명예훼손죄’로 처벌 받는다. 또 물건 공금, 교육, 시설 이용을 못하게 하면 교육법, 복지법 등에 의해 처벌된다. 이미 차별금지법에 버금가는 법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차별금지법이 나와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차별 금지법이 동성애자들을 위한 법인지 합리적 의심을 해야 한다. 마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인권운동 포퍼먼스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 아닌 것으로 의심할 만한 것처럼 말이다. 다른 여러 나라의 예를 들어보자. 이 법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형사 처벌하기 위한 조항으로 사용됐다. 특히 교회 박해를 위한 합법적 명분으로 악용됐다. 토니미아노 목사, 해리해몬드, 아케그린 목사 등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런 예는 차고 넘친다. 그 결과 유럽 교회들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교회는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에드먼드 버크가 “선량한 이들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 피운다”고 한 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가 불의한 일을 목도하면서도 침묵, 방관한다면 맛을 잃은 소금이요, 불 꺼진 등일 뿐이다. 골리앗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 때, 15세의 소년 다윗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 17:26)는 거룩한 분노를 토했다.

        2020년 6월 29일 차별금지법이 발의 된 지금, 한국교회는 다윗과 같은 거룩한 분노로 반응해야 마땅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한 말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사회적 전환기에서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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